히토요시 구마의 문화 기틀을 다진
사가라 7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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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라(相良) 700년의 역사가 밝히는 것은 영주와 민중의 마음이 하나가 된 이야기이다.

히토요시 구마(人吉球磨)의 일본유산 스토리의 주인공은 사가라 가문(相良氏)이다. 사가라 가문의 700년에 걸친 통치는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의 명령으로 도토미노쿠니 사가라노쇼(遠江国相良荘 현재 시즈오카)에서 히토요시 구마 지역(人吉球磨地域)으로 파견된 것으로 시작된다.

당시 히토요시 구마 지역(人吉球磨地域)은 호족들이 저마다 제 땅을 다스리고 있었다. 사가라 가문은 영토를 넓혀 호족들을 멸망시키면서도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하여 어떤 비책을 썼다. 보통 새 영주는 기존에 있던 호족들의 모든 문화를 없애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사가라 가문은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린 문화, 건조물, 그리고 민중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것을 인정하여 관대히 받아들였다.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의도는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사가라 가문의 통치 이전에 있던 문화재가 현재에 계승되어 온 것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가라 가문(相良氏)이 700년의 오랜 동안 같은 영토에서 계속 존속할 수 있던 배경에는 일본사의 전환기라 불리는 시기에 정세를 잘 분석하여, 그 당시의 최선책을 판단한 가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를 읽는 힘, 동향을 분석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의 존재, 그리고 사가라 가문의 관대함. 통치를 잘하면 번(藩)의 재정도 좋아지며, 당연히 민중은 영주에게 호의를 갖게 된다. 사가라 700년의 세월에는 영주와 민중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지역 문화를 지키며, 새로운 문화를 흡수하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해 온 역사가 새겨져 있다.

히토요시 성터(人吉城跡)

사가라(相良)700년

히토요시 구마의 스토리